1206년, 칭기즈칸이 몽골 제국을 통일한 후 전 세계의 악몽이 시작되었다. 호레즘 왕국의 멸망, 유럽 침입, 남금송의 멸망, 남방정벌 등 기동력을 중시하는 기마군대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우리나라 또한 9차례나 침공당했고, 베트남 또한 피할 길이 없었다. 전 세계 전쟁사에서도 위대한 이름 쩐흥다오에 대해 알아보자.
베트남의 위대한 명장 쩐흥다오
베트남 쩐왕조의 명장이며, 본명은 쭌 꾸옥 뚜언 (Tran Quoc Tuan)으로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 수없지만 1228년부터 1231년 사이에 태어났고 1300년에 사망하였다고 전해진다. 쩐왕조의 1대 왕 쩐태종의 조카이며, 2대 왕대왕 쩐성종의 사촌이자 이부형제이기도 한 복잡한 족보를 가지고 있지만, 이건 현대의 기준이고 단순 혈통으로만 따지면 리왕조와 쩐왕조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최고의 혈통이라고 볼 수 있다. 역사책에 따르면 아주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있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 박식하고 재능 많은 이로 성장했다. 한때 그의 아버지가 실각하는 등 한때의 위기도 있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최우선이었고 왕이 적의 침입에 올바르게 대응하도록 전심을 다해 조언하고 지원했다.
1257년 원나라의 1차 침입
대월과 원나라의 첫 만남은 송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길을 내어 달라는 원나라의 사신들이 대월에 오면서였다. 이러한 원나라의 요구에 쩐태종은 원나라의 사신들이 건방지고 무례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들을 모두 감옥에 가둬 버린다.이 소식을 접한 당시 군대를 이끌던 몽골의 장수 우량카타이는 격분하여 4만여 명의 기마대를 이끌고 대월의 수도 탕롱(하노이)으로 쳐들어갔고, 베트남은 쩐 태종은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맞섰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수도를 넘겨주게 된다. 원나라의 군대는 수도와 그 일대를 약탈과 살인으로 초토화를 시켜 버린다. 하지만 대월은 후퇴하면서 게릴라와 보급로를 집요하게 공격하고 결국 1차 침입을 막아냈다.이 때 처음 쩐흥다오도 장수로 참전하였는데 왕족이었던 그의 출신상 중요한 역할을 가진 장수로 활약했을 것이라는 예상만 있을 뿐, 기록에 남아있는 특별한 전공은 없다.
1285년 원나라의 2차 침입
1779년 송나라를 멸망시킨 원나라의 베트남 침공이 본격화된다. 그 규모는 무려 30만에서 50만 명이었고 사실상 대월의 멸망은 확정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쩐인조(쩐왕조의 3대 왕)는 '항복을 할 것이냐 항쟁을 할 것이냐'를 두고 고심하였다. 이에 쩐흥다오는 ''항복을 결정하셨다면 신의 목부터 베소서'' 라고 말하며 쩐인조의 항쟁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쩐흥다오는 25만 명에 달하는 장정을 모집하여 이 인원을 가지고 청야전술과 게릴라전으로 원나라의 군대를 상대했는데, 여기서 청야전술이란 방어하는 측 입장에서 적군의 손에 들어가면 유용한 물자나 식량등을 모두 없애버리는 전술이다. 이런 전술은 연나라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지옥이었다. 더운 기후, 습한 날씨, 모기를 위시한 수많은 독충들 때문에 힘든데, 적은 보급과 약탈의 부재는 더욱 원나라군대를 힘들게 하였다. 안 그래도 힘든데 25만 명이 틈만 나면 게릴라를 걸어오니 원나라는 버틸 수 없었고, 원나라는 티엔막강 전투에서 대패를 끝으로 철수한다. 이 전쟁에서 원나라는 10만 명에서 20만 명의 인원이 사망하고 5만 명이 포로로 잡히면서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이때 대월은 총사령관이 쩐인종(쩐왕조 3대 왕)이었고, 태상황제인 쩐성종(쩐 왕조 2대 왕)도 함께 전쟁에 참여했지만 쩐흥다오는 총사령관의 역할을 하며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1287년 원나라의 3차 침입
원나라의 대월 공격이 실패로 끝나자, 당시 원나라 황제였던 쿠빌라이 칸은 대노하였다고 전해진다. 사신도 보냈지만 죽거나 쫓겨났고 이에 쿠빌라이 칸은 다시 30만 명의 군대로 대월 3차 공격을 준비하게 된다.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2년 후 1287년, 원나라의 30만 군대는 대월의 수도 탕룽(하노이)로 진격한다. 쩐흥다오는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에 참여하였고 수많은 활약을 펼친다. 대표적인 전투로는 탕룽전투이다. 백등강을 전장으로 삼고 강바닥에 말뚝을 박은 후 만조 때 원나라의 수군을 유인해 움직일 수 없게 만든 다음 불화살을 쏴 전멸시킨다. 육군에서도 엄청난 활약을 이어갔다. 전쟁이 일어나자마자 충돌한 국경에서의 전투에서도 대승하였고, 계속되는 게릴라전은 원나라 군대를 힘들게 했으며 원나라의 보급을 약탈해 원나라를 궁지에 몰아 넣는다. 이에 원나라에 탈영병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런 원나라에 거센 반격을 가해 엄청난 피해를 준다. 1288년 4월, 낭산전투를 마지막으로 원나라의 3차 침입은 실패로 돌아간다. 이 전쟁으로 원나라는 20만 명 ~ 30만 명이 사망했고 대월은 6만 명이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원나라의 황제 쿠빌라이는 계속 남방정벌을 원했지만, 원나라의 내부사정이 좋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쿠빌라이 칸이 사망하면서 침공은 멈추게 된다. 3차 전쟁이 끝난 후 공을 인정받아 흥도왕에 봉해지면서 본 이름인 쩐 꾸옥 뚜언과 흥도왕을 합쳐 쩐흥다오로 불리게 되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순신과 같은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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