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이해하기 / / 2023. 4. 21. 19:33

막 딘 찌와 고려 아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판씨가문 방문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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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베트남의 Phan Huy Giam의 교회를 방문해 남긴 방명록.

한국과 베트남 양국 간의 교류역사를 보면 두 나라가 접촉한 역사적 기록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사신들의 만남, 조선시대 제주도민들이 베트남으로 표류하여 무사히 돌아왔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사실 화산이 씨와 정선이 씨도 한국역사의 기록일 뿐 베트남에서는 전혀 역사적 기록에 없는 인물들이다. 무려 왕족인데 말이다. 한베 수교 후 양국 간의 교류 연구가 있었는데 화산이 씨, 정선이 씨, 그리고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막씨의 연구도 진행되었는데 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막 딘 찌 소개

막 딘 찌(mac dinh chi)는 1280년에서 1346년까지 살았던 베트남 쩐 왕조의 유명한 시인이자 외교관으로 매우 유명한 인물이다. 이래적으로 외모가 대단히 추했다고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 외모와는 다르게 매우 박학다식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베트남과 원나라에서 장원급제한 인물로 양국장원이라고 불렸으며, 1308년 원나라에서 원 무종이 즉위하고 이를 축하하기 위해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게 되는데 막 딘 찌에 대한 원나라의 역사적 기록만 봐도 찬양일색으로 대단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외교관으로서의 임무도 중출 했지만 시를 짓는 능력이 특히 탁월했는데 그 시들은 베트남 역사서 또는 중국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후에 세워질 막왕조의 직계조상이다.

막 딘 찌와 고려인 아내에 대한 전설

한국의 역사서에도 베트남의 역사서에도 막 딘 찌가 고려에 방문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베트남의 막씨 종친회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막 딘 찌가 고려아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중국에 사신으로 여러번 방문을 하게 되는데, 성격이 좋고 학식이 풍부해 많은 중국 고관 및 외교관들과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특히 고려대사와 사이가 매우 좋았는데 나중에 두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의 외교임무가 끝나자 고려대사가 막 딘 찌를 초청 하여 함께 고려의 개성으로 오게 된다. 그는 4개월간 고려에 머물게 되는데 고려사신은 자신의 조카를 막 딘 찌를 소개해주었고 둘은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 이후 둘은 중국으로 돌아가 5년을 함께 했는데, 슬하에 1남 1녀의 자식이 태어났다. 이후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고려로 돌아왔고, 막 딘 찌는 베트남으로 돌아가게 된다. 10년 후에 막 딘 찌가 베트남에서 아내를 만나러 고려에 찾아가게 되는데 무려 1년이 걸린 여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에서 머물며 슬하에 사내아이를 한 명 더 낳게 되고 얼마나 오래 고려에 머물다가 떠났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갔다. 남편이 떠나고 그의 아내는 주로 막내아들과 지냈고 늙어서는 절에 가서 비구니가 되었고 93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자녀양육에 매우 헌신적이었고 부지런했으며 현명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의 첫째 아들은 군관이 되어 12명의 자녀를 낳았고, 둘째 아들은 고려에서 벼슬을 지냈다고 알려졌다.

역사적 근거와 뿌리를 찾으려는 막씨의 후손들

위에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한국이건 베트남에서도 없다. 한국에서는 공식적인 막씨가 없고 화산이씨나 정선이 씨처럼 족보가 존재하지도 않으니 그냥 에피소드 정도로 결론을 내렸지만 북한에는 막씨가 존재하기 때문에 정확한 조사를 한 것은 아니다. 실제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북한정부에 막씨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는데 북한정부는 이를 거부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역사적 기록 외에 막씨에 대한 흔적은 베트남에 여러 번 있었다. 첫 흔적은 1926년 베트남 안남잡지 4월호에 쓴 기사에서 나온 내용이다. 그 내용인 즉 '레 칵 호에'라는 기자가 시골에 사는 부모님을 만나러 가던 중 버스가 고장 나서 멈춰 섰다. 그때 한 조선인과 대화를 하게 됐는데, 그는 조선에서 지방의 관리로 일했는데, 일제의 횡포 때문에 사표를 내고 베트남에서 고려인삼을 판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은 베트남의 '막 딘 찌'의 후손이고, 막 딘 찌는 베트남의 외교관이었으며, 중국에서의 고려사신과의 친분, 고려여인과 혼인한 사실 등을 말했으며 그 핏줄이 아직까지 조선에 이어져 오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 내용이 놀랍게도 베트남 막씨 종친회의 전설과 일치한다. 그리고 1966년, 베트남의 호찌민으로 와서 자신이 막 딘 찌의 후손이며 뿌리를 찾으러 왔다고 주장하는 한국인이 있었다. 그 당시 호찌민의 많은 매스컴에 보도했지만 당시 역사적 상황이 좋지 못해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2012년, 막 단 찌 사원에 막씨 종친회의 사람들이 단체로 방문했는데, 국적이 다양했다. 미국, 중국, 영국 등 그들 중 2명의 한국인이 포함되어 있었고, 한 달 후에도 막 딘 찌 사원에 7명의 한국인들이 찾아왔는데, 언어장벽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이렇듯 역사적 사실은 없지만 그렇다고 전설로 치부하기에는 좀 찜찜한 구석이 있다.

반기문 유엔총장의 판씨가문 방문 에피소드

2015년 5월 22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개발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베트남을 찾았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판 후이 지암(Phan Huy Giam)씨가 운영하는 교회로 방문을 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2주 전부터 UN대표단이 방문할 것이라고 통보를 받았고, 누가 오는지는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뜬금없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방문했고 45분을 머물다가 떠났는데, 특별히 방문이유를 말하지 않았으며, 족보를 보여달라고 요청하지도 않았고, 조용히 판 씨 제단에 향을 피우고 방명록을 적고 기념사진을 찍고 떠났다. 그때 같이 동행한 통역가가 말하기를 반기문 사무총장은 자신이 베트남의 Phan Huy Chu의 후손이라고 말했으며, 그게 유일한 판 씨 가문에 대한 내용이다. 그래서 베트남에서는 반기문이 베트남 사람의 후손이라며 한 때 큰 화제가 되었다. 유엔에서는 그저 판 씨 가문이 학문으로 유명해서 방문한 것이며 지나친 억측은 삼가달라고 했고, 언론에서도 그저 정치적 행보일 뿐이라며 과대해석을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가 쓴 방명록의 내용만 봐도 과대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 내용인 즉 ''현재 유엔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판 씨 가문의 아들로서 저는 조상의 가르침을 따르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이러니 베트남에서 화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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